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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밥보다 커피

꿍꿍이 blog오리진 2014.09.25 14:23


밥보다 커피

 

'커피 이야기'라는 책도 낸 조선일보 음식 담당 김성윤 기자는 커피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사는 마니아다. 총각 시절엔 서구 문화에 일찌감치 눈뜬 아버지가 끓여주는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출근하자마자 달려가는 곳도 부장 자리가 아니라 커피 자판기다. 달큼한 '다방 커피' 한 잔을 마셔야 손에 일이 잡힌단다. 그는 카페인이 자기 몸에선 힘을 못 쓴다고 자랑했다.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위장을 부드럽게 적셔줘야 잠이 잘 온다니까요."

▶문제는 군대였다. 훈련병 시절 커피는 금기였다. 청산해야 할 사회악(惡)에 커피가 들어 있었다. 커피 없이 일주일을 버티다 공황 상태에 빠졌다. 훈련 조교 눈을 피해 자판기로 달려갔다. 100원 동전 한 개 넣고 마신 그 커피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더란다. 요즘도 에스프레소 더블을 비롯해 하루 다섯 잔 넘게 마시는 김 기자의 후덕한 풍채엔 커피가 절반을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을 쓰려고 하루 50잔씩 커피를 마셨다는 발자크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나라에 커피 애호가가 급증한 건 사실이다. 성인의 커피 마시는 횟수가 일주일에 12.3회로 배추김치(11.8회)와 밥(9.5회)을 앞질렀다는 통계가 나왔다. 커피 공화국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건 1999년 이화여대 앞에 문을 연 스타벅스였다. '커피 둘, 크리머 둘, 설탕 하나'라는 인스턴트 커피 공식이 깨졌다. 그것도 유럽에선 '양말 빤 물'로 지탄받는 '아메리카노'에 의해. '된장녀'들이나 마신다는 값비싼 '테이크 아웃 커피' 대열에 직장인 아저씨들이 합류하면서 순식간에 국민 음료로 등극했다.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시는 유행은 과거에도 있었다. 전쟁 직후 붐을 맞은 다방은 1980년대 말 서울에만 1만1000개나 돼 북새통을 이뤘다. 커피에 달걀노른자 하나 떨어뜨리거나, 참기름까지 한두 방울 친 국적 불명 모닝커피가 인기였다. 아침을 걸렀거나 속 편치 않은 사람에겐 해장거리로도 충분했다니 밥을 대신하는 구실도 했다.

 ▶노른자 넣지 않는 '신식 커피' 열량도 그에 못지않다. 카페라테, 카페모카는 한 잔 열량이 300㎉를 넘어 밥 한 그릇과 맞먹는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비만을 부르는 셈이다. 밥 대신 커피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좋지 않다. 에너지 밀도는 크지만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다. 프랑스 외교관 탈레랑은 커피를 '악마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같이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고 찬미했다지만 '밥심'으로 사는 한국 아줌마는 커피보다 밥이 더 좋다. 몇 백 배 더 좋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방현철 조선일보 논설위원께서 작성하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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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3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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