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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만물상] '이재만' 사칭

꿍꿍이 blog오리진 2015.02.24 10:02

[만물상] '이재만' 사칭

 

선배 친구가 병원장이다. 얼마 전 조심스레 전화를 걸어와 선배와 상의했다. "누가 청와대 수석이라며 부탁을 하는데 아무래도 께름칙해서…." 그 자초지종이 기가 막혔다. 스스로 '복지 담당 수석'이라는 목소리는 은근히 상대를 내리눌렀다고 했다. "좋은 분이 찾아갈 테니 그가 하자는 대로 좀 해주면 고맙겠소." 둘이 나눈 얘기처럼 이튿날 웬 남자가 주스 한 박스를 들고 병원에 왔다. 병원의 거래 은행을 다른 곳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민간 기업은 '관(官)'을 머리에 이고 산다. 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에게 의료 담당 관리들은 줄줄이 상전이다. 그 꼭대기에 청와대 수석이 있다. 안면은 없지만 그분이 전화를 했다면 그냥 넘길 수 없다. 병원장이 '수석 나으리'에게 언감생심 전화로 직접 재확인하려는 엄두는 내지 못했다. 애만 태우다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 전화가 수석 전화 맞는지 좀 알아봐 주게." 역시 가짜였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진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사칭한 사건이 터졌다. 대우건설은 작년여름 '이재만 비서관님 전화'에 깜짝 놀라 50대 사기꾼을 '묻지 마 채용'했다. 그가 내민 가짜 이력서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그다음 날 부장 자리로 출근시켰다. 그는 올여름까지 1년 동안 부장 노릇을 했다. 사기꾼은 업무 능력이 너무 떨어져 버틸 수 없자 대우건설을 관뒀다. KT를 상대로 또 이 비서관을 사칭하다 덜미가 잡혔다. ▶대통령을 15년 가까이 모셨다는 '이재만'이 누구길래 이름 석 자만 듣고도 큰 기업 사장님이 납작 엎드린 것일까. 청와대 실세들이 종종 이런 인사 청탁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소극(笑劇)이 일어났을까. 이 사기꾼은 청와대 같은 권력기관이 대우건설·KT의 고위 임원 인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이재만 비서관처럼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문고리 권력자를 사칭해야 입김이 쉽게 먹힌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만약 KT 회장이 받은 전화가 진짜 이재만 비서관이었는데 눈치 없이 경찰에 신고했다면 과연 뒤탈은 없었을까. 

▶올 8월엔 "불륜을 폭로하겠다"는 무작위 전화로 공무원 6명에게 2600만원을 후려낸 사기범이 있긴 했었다. 권력자를 사칭하고 농락하는 일은 1950년대 '경무대 사칭' 이래 거르는 해가 없다. 1991년엔 청와대 사칭 사건 보도가 여든 건이 넘었다. 세월은 흘러도 수법은 그대로다. 권력 실세들이 인사에 개입하는 일이 없다면 이런 코미디도 없을 것이다. 사기꾼에 속는 사람이 바보라고 괜스레 애먼 얼굴 할 것 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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